MZ세대라는 용어는 도대체 누가 만든 거냐
넓게 보면 1981년~2012년생이라고 한다. 필자도 MZ세대다. 곧 40대인데... 고맙다. 세상아. 조카가 초등학교 4학년이다. 같은 세대였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세대라, 세대갈등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갈등이 없을 순 없다) 개인주의, 디지털기기, 자유로운 세대라는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에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게, 필자가 10대, 20대일 때 즈음이었다.(90년대 후반) 지금도 그렇지만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이기주의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되는 수준이다. 지금 MZ세대에 대해 이해 못 하는 부장님이 M세대 거나, 바로 앞세대일 거다. 부장님은 "저 사람은 완전 개인주의다."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지라도, 같은 세대의 다른 구성원(동년배 다른 동기들)은 그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사회통념에 적응을 한 것이다. 모두가 개인주의가 강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서구화되면서 점점 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것뿐이다. 이건 당연한 현상이다. 환경이 바뀌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M세대가 Z세대의 부모, 삼촌뻘 된다. 부모인 M세대는 사회로부터 억압을 경험했고,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교육환경도 조성이 되는 것이다. 환경도 변해가고, 육아를 하는 사람의 태도도 변하고,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었다. 단지 인지하지 못한 것뿐이다. 이는 집단주의적 사고일 수 있다. 보수적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근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늘 새로운 세대는 구세대로부터 그런 소리를 듣곤 했다. 수천 년 전에도 유물에도 그런 푸념들이 적혀있곤 한다. "요즘 것들이란."이라고.
김민재 선수, 국가대표팀 간의 불화
얼마 전 김민재 선수가 대표팀의 잦은 호출에 불만을 표했다. 주장 손흥민 선수와도 다툼이 있었는지, SNS 팔로워를 끊기도 했다고 한다. 앞세대분들에겐 생소한 내용이라 생각한다. 카카오톡으로 설명하자면 대화방을 나갔다거나, 연락처리스트에서 삭제를 한 것과 비슷한 행동이다. 살짝 도가 지나칠 수 있으나, MZ세대에서는 흔히 일어난 일이다. 물론 기분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말이다. MZ세대는 카카오톡 외 SNS서비스(주로 인스타)로 주로 연락한다. 이성을 만나는 것도, 온라인에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M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페이스북조차 Z세대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SNS사용하는 방식만 봐도, 세대 간의 차이는 분명 있다.
김민재 선수의 행동은 개인주의적 발언이다. 이게 서구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는 발언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엔 한국사회가 개인주의를 차별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의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건 집단주의적 사고이고,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다.(집단주의에 관한 글참고) 우리 사회는 관계주의 사회고, 그런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집단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개인은 집단을 위하고, 집단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다. 기브엔 테이크인 것이다. 하지만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이 사라진다. 김민재 선수의 발언은 개인주의적인 발언이었지만, 흥분한 팬들의 반응은 집단주의적이었다. 독재국가도 아니고, 개인의 재능을 본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일까. 내가 보기엔 북한이나 중국의 모습이었다. 물론 일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3국을 대부분 우리는 싫어한다. 그 나라들과 같은 모습을, 같은 말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팬의 입장에서 이해해 줄 건 해주자. 내가 내 재산, 내 커리어 쌓고 싶다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마무리
필자는 세대 간의 갈등을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김민재선수와 대표팀 간의 불화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가던 집단주의가 다시 나타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집단주의는 일제의 잔재다. 우리나라는 집단주의가 아니라, 관계주의 사회다. 하지만 종종 집단주의적 발상이 툭하고 튀어나온다. 물론 집단주의도 장점은 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다 함께 몰입해서 헤쳐나간다. 일제의 잔재긴 하나, 전쟁 이후 산업을 다시 일으킬 때, 대한민국은 "잘살아보세"라는 목표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일구었다. 때마침 세계경제의 호황이란 좋은 흐름도 탔다. 하지만 집단주의는 단점도 존재한다. 일부 집단주의자들에 의해 독재는 용인되었다. 민주주의는 분명 후퇴했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노동권은 침해되었고, 일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다. 감추고 싶어서 묵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성실하지도 지혜롭지도 인간답지도 않은 발상이다. 지금 이 시대에 그때처럼 일하라고 할 수 있을까. 내 귀한 자식이 사회 진출할 때 그런 환경에서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하는 걸까.(SPC제빵공장 20대 사망사고, 대우조선해양 사망사고, 택배물류센터감전사고) 이들이 이런 산업환경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과거로 돌리려고 하는 세력이 분명 존재한다. 이런 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필자는 서글퍼진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와 인구절벽 문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집값문제만으로 인구절벽을 설명할 수 없다. 노동환경은 어떤가. 우리는 왜 불행한가. 왜 OECD통계에서 자살률은 항상 1위를 하는 것일까. 개인주의자 입장에서는 사회의 집단주의적 행동은, 억압이다. 독재다. 그건 분명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모습이다. 스스로 집단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은 분명 일제강점기의 잔재다. 살아남은 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죽은 이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감전사고, 추락사고, 끼임 사고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되풀이될 뿐이다. 애도만 할게 아니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내가 일제 같은 집단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여담
경제성장을 일구어낸 앞세대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덕분에 경제적으로 더 좋은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외 묵인된 것들에 의해, 지금의 대한민국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갈등문제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발목을 잡고 있다. 누군가는 갈등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 정치세력은 한나라당이었고, 새누리당이었다가, 국민의 힘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독재자를 배출한 그 정당말이다. 왜 아직 존재하고 있는지, 왜 아직 지지를 하고 계시는지, 고민해 달라. 우리는 북한과 경제규모 50배가 넘게 차이 난다. 우리 국방 예산보다, 북한의 전체 예산이 더 낮다. 핵이라는 비대칭무기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전쟁을 할 수 없지만, 북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자 세계평화의 파수꾼, 미국은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13배 이상이다. 북한과 미국은 600배 차이가 난다. 단순히 이렇게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북한이 핵무기 한 개 있으면 미국은 600개 있다. 현재 국방력 3위인 너도 미국이 무서워서, 현재 핵무기를 쓰겠다는 엄포도 못하고 있다. 그런데 러의 절반도 안 되는 북한이 무슨 수로 전쟁을 일으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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